• 최종편집 2024-05-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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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이 땅에 사는 인생을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보면 일생 동안 받기만 하는 거지 인생으로 사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일생 동안 베푸는 삶으로 사는 부유한 인생이 있다. 가진 것이 많다고 부자가 아니다. 부자는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비록 가난하지만 베풀 수 있는 인생이 부유한 자이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많이 소유해서도 그 마음이 거지로 사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비록 가진 소유가 적어도 베풀면서 사는 넉넉한 자가 있다. 이 같은 것이 제도와 관행을 따라 이루어진 거지가 비리요, 지능적 수법을 이용한 것이 사기요, 무력적 폭력을 사용한 것이 강도이다. 그러나 거지를 주려는 신사로 변화시키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그래서 주님은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20:35)고 했다. 예수 이름으로 주는 자가 복되고, 예수 이름으로 받는 자가 복이 있다. 주님의 이름으로 주고받을 때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는 이 도성에서 예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나는 어떤 유형의 성도인가? 오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네 가지 유형의 사람을 찾아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이 말씀이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좋은 거울이 되기를 바란다. 첫째, 앉은뱅이 신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남의 도움으로 살아왔거니와 앞으로도 남의 도움을 받고 살아야 하니 불행한 삶이다. 매사에 피동적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주변에 영적인 앉은뱅이가 참으로 많다. 찾아가서 모시고 나오지 않으면 이곳에 나올 수 없는 영적인 앉은뱅이 신자이다. 자기 스스로 즐거운 마음으로 거룩한 반열에 참여할 수 없는 자들이다. 둘째, 그 친구들이다. 그를 언제나 성전 미문에 매어 놓은 자들이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보다 귀한 분들이 없다. 오늘날로 말하면 사회사업가이다. 그들은 왜 성전 미문을 택했을까? 아마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이 많은 종교인들의 마음에 동정과 관심을 받기를 원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왜 그를 메고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을까? 정작 앉은뱅이가 만나야 할 분은 하나님인데 이것이 우리의 약점이다. 오늘날도 사회사업가형의 신자가 많다. 이웃과 인간관계를 잘한다. 구제하고 자선하는 일에도 힘쓴다. 어려운 자들의 아픔에도 동참하고 동정도 많이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복음을 심어주지 못한다. 셋째,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다. 대제사장과 성전 맡은 자들이다. 그리고 거룩하게 구별되게 사는 바리새인들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두개인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생명이 없는 실상은 죽은 자들이다. 이 땅 위에 생명 없이 죽은 종교인들이 많다. 넷째, 예수 이름을 증거 하는 사도들이다. 이들은 예수를 만난 자들이다. 예수 십자가와 부활한 예수를 믿는 생명의 무리들이다. 이들은 어디를 가든지 예수 생명을 증거 하여 죽은 영혼을 살리는 자들이다.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자들이며, 불필요한 수고를 거치게 하며, 외식적인 종교인들을 책망하고, 예수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종들이다. 그러면 이들의 믿음은 어떠했는가?

 

본장은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사도들에게 일어난 첫 번째 기적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체험했다. 이 같은 성령의 실례로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 제 구 시 기도 시간

제 구 시 기도 시간1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제 구 시는 우리 시간으로는 오후 3시쯤 된다. 이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어중간은 시간이다. 일을 다시 시작하기는 조금 늦고, 일을 마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성전을 찾는 자들이 별로 없다. 그러니 자연히 자신이 있는 삶의 현장에서 기도하게 되고, 이것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형식적인 기도가 되고, 종교인들에게는 외식하는 기도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사도들은 이때 성전으로 올라갔다. 남이 할 수 없는 시간에 하는 이것이 놀라운 기적이다.

정시기도가 중요하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다. 그래서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6:18)하라고 했다. 그러나 범사에 무시로 기도할 수 있는 자는 정시 기도의 훈련이 된 자라야 가능하다. 여러분 중에 특수 선교 단체나 기관에서 훈련을 받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일정한 기간 동안에 나의 사적인 모든 것을 단절하고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나의 삶에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체험하게 된다.

 

어려운 때에 엎드려 기도하라. 오후 3시가 가장 어중간은 시간이다. 뿐만 아니라 나의 사역을 위해서는 가장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다. 이런 때에 성전을 향해 나아가는 삶은 참으로 귀한 믿음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속에서 가장 바치기 어려운 제 구 시 기도 시간이 언제인가? 아마 새벽 시간일 것이다. 조금 더 당길 수도 없고, 조금 더 늦출 수도 없는 시간이다. 그래서 하루 중 이 시간이 가장 하나님을 만나기 좋은 시간이고, 자신을 돌아보기 좋은 시간이다. 모든 일에 적절한 기회가 있다. 언제가 가장 적기인가? 깨닫는 그 순간이다. 깨닫는 그 순간에 결단하면 된다. 마귀는 항상 다음에”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한다. 마귀는 지금까지 수많은 수법으로 우리를 속여 왔다. 마귀는 이렇게 가르친다. 어린 자녀를 가지신 분에게는 자녀를 양육하신 후에라고 하며, 부모님이 계시는 분은 부모님이 죽고 난 후에라고 말한다. 이런 자들 뒤통수에 마귀가 앉아서 조종을 하고 있는데 그 말에 다 넘어가 버린다. 그러나 바울은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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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사도행전 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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